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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신라면 블랙(블랙)은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6월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이다. NYT 제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가 전문가 7인의 추천을 받아 전 세계 11개 라면의 순위를 매긴 결과였다. 기사를 쓴 NYT 기자 안나 펄링(Anna Perling)은 블랙을 두고 “매콤한 국물, 건더기, 맛있는 면발이 조화를 이룬 일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먹는 걸 멈출 수 없는 라면”이라고 했다. 세계를 울린 맛이 최정상에 서기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9년이었다.
역경 극복해 빛난 블랙
블랙은 2011년 4월 탄생했다. 검은색(블랙)이 상징하는 고급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제품은 담고 있었다. 신라면 출시 25주년을 기념해 만든 프리미엄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공전의 히트 상품 `신라면` 명성에 흠을 남긴다면 출시하지 않는 것만 못했다.
신춘호 농심그룹 창업주가 제품명 선정 과정부터 개발과 출시까지 손수 챙겼다. 국물과 건더기, 면발까지 모든 게 전보다 나아야 했다. 기본 베이스는 설렁탕이었다. 대다수 국민이 즐기는데 다진 양념(다대기)을 곁들이는 습관을 고려하면 라면도 잘 어울리리라는 판단에서였다. 이렇게 공들인 시간이 3년 가까이 된다.
시작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출시하고 한 달 만에 매출 90억원을 달성했을 땐 예상하지 못했다. 곧 역경이 시작하리라는 것을. 공정거래위원회는 그해 6월 농심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블랙의 광고가 과장이라는 게 이유였다. 매출이 빠졌다. 블랙은 몸값을 1600원에서 150원 내렸다. 자세를 낮췄지만 역부족이었다. 원가 부담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그해 8월 국내 판매를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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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수입의 코미디를 막은 건 소비자였다. 이럴 거면 다시 출시하라는 요구가 거셌다. 시장의 부름을 받은 블랙은 2012년 10월 다시 시판을 시작했다. 판매를 중단한 지 14개월 만이었다. 불티나게 팔렸다. 판매량은 보름 만에 300만개를 돌파했다. 평소 몸 관리를 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블랙은 국내에서 여의찮게 되자 해외에서 몸집을 키워왔다. 북미 시장에 주력한 게 주효했다. 구매력이 갖춰진 곳이라서 프리미엄 라면 수요가 있었다. 이미 2012년 2월 미국의 라면 전문 블로거 `라면 레이터`(Ramen rater)가 블랙을 세계 10대 라면으로 꼽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수 엑스포는 국내외 이목을 블랙에 집중시켰다. 이로써 블랙은 국내에 다시 등판할 명분을, 해외에서 저변을 넓혀갈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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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블랙의 DNA를 엿볼 수 있다. 시장을 읽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굵직하게 2011년 프리미엄으로 한번, 2017년 컵라면으로 다시 맛을 바꾼 것도 마찬가지다. 라면은 컵라면보다 냄비로 먹으면 맛이 낫다. 센 불로 익히면 풍미가 깊기 때문이다. 컵라면을 전자레인지에 조리하면 냄비 라면에 가까운 맛을 낸다. 물론 전부터 이런 조리 방식은 흔했다. 그런데 서투른 조리는 안전을 해칠 수 있었다. `컵`(용기)이 관건이었다. 블랙은 전자레인지 `전용 용기`를 출시하면서 이 시장을 선점하기 시작했다. 제품의 배합비와 원료도 전자레인지에 최적한 상태로 바꿨다.
블랙은 출시 이후 올해(상반기)까지 10년째 4억개를 팔았다. 길이로 치면, 8만4000km(봉지 21cm 기준)다. 지구(둘레 약 4만km)를 두 바퀴 감고도 남는다. 토양을 잘 일군 덕이었다. 준비하지 않았다면, 코로나 19로 찾아온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특히 상반기 미국 실적이 눈부시다. 매출은 1350만 달러로 작년보다 49% 증가했다. 간편식 수요가 증가한 데다가 NYT의 평가까지 맞물린 게 호재였다.
농심 전체로 보더라도 미국 월마트와 코스트코에서 같은 기간 35%와 51% 각각 매출이 성장한 것은 블랙 성장세를 빼놓고 논하기는 어렵다.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농심 매출이 79% 뛴 것도 마찬가지다. 하반기 출발도 나쁘지 않다. 블랙의 지난 7월 매출은 국내에서 두 배, 미국에서 50% 각각 전년보다 늘었다. 미국 일부 마트에서는 블랙이 품귀 사태를 빚어 물량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알려졌다.
농심 관계자는 “전 세계 라면 업체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미국 시장에서 뉴욕타임스 보도로 블랙의 위상이 다시 빛났다”며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을 활발하게 펴 미국에서 블랙의 인기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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