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소리]과밀의 도시

  • 등록 2022-11-06 오후 1:01:38

    수정 2022-11-06 오후 1:01:38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 처음 인파의 위력을 체감한 건 고교 시절 명동에서였다. 친구 몇몇과 크리스마스를 맞아 명동을 놀러갔는데 머리털 나고 가장 많은 인파를 목도했다.

불꽃축제 관람 후 귀가하는 시민들의 모습(사진=이데일리DB)
친구들끼리 “야, 발만 들어도 앞으로 간다”면서 낄낄댔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은 공포보다는 유희거리였다. 사람이 넘실대는 거리는 그야말로 축제였고 볼거리였다.

2002년 월드컵은 이 같은 감정이 정점을 찍게 된 경험이었다. 가장 짜릿한 경기였던 이탈리아전을 학교 노천극장에서 봤는데, 경기도 워낙 재밌었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팔을 내뻗는 장관에는 그만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사람이 붐비는 곳은 피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 개최된 불꽃축제만은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일어났다. 사람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불꽃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는 간구였다.

2. 당일 당직근무여서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마포대교 상단에서 보자는 마음으로 불꽃축제 현장을 찾았다. 유명 축제답게 상대적으로 축제 현장에서 떨어진 마포대교도 인파로 붐볐다. 마포역 4번출구에서 강변북로 분기점까지 고작 485m를 가는데 1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아, 좀 무서운데.” 함께 간 동거인의 한 마디에 기분이 으스스해졌다. 마포대교 한 켠 인도의 이쪽은 강물이 넘실댔고, 저쪽은 차들이 질주했다.

돌아가겠다 마음을 먹었다면 복잡하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전진할 요량에서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거대한 인간 흐름에 이동을 맡겨야했다.

통행로가 좁은 이태원에서 느꼈을 공포는 더했을 것이다. 마포대교 위 강물과 도로는 대피의 공간이 될 수 없을지언정 시야는 확보할 수 있었다. 꽉 막힌 벽 사이에서 타인들에게 이동을 맡겨야 했던 무력감은 훨씬 큰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3. ‘오시야’(押し屋). 한국에서는 ‘푸시맨’으로 불렸던 아르바이트는 일본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전철 승객을 안으로 밀어넣어주는 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많은 출퇴근 시간에 집중된다.

출근 시간이 빠듯한 승객과 승객을 한 명이라도 더 태워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운영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비롯됐던 현상이다. 시대가 바뀌면서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지금은 푸시맨이 사라졌다. 대신 무리한 탑승을 막는 ‘커트맨’이 생겼다.

지난 불꽃축제 때도 이 같은 일을 도와줬던 운영요원들과 안전요원이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재개된 행사였던 만큼 100만명 이상이 다녀갈 것이 관측됐고 주최 측은 18.5%가량 운영요원·안전요원을 증원했다. 불꽃축제에 투입된 안전관리 인원은 무려 5700명이었다.

4. 서울의 과밀은 여전한 문제다. 수요 예측에 실패했던 9호선은 혼잡도가 지나치게 높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9호선의 혼잡도는 238%까지로 집계됐다. 이럴 경우 차내 이산화탄소 농도는 기준치인 2500ppm을 훌쩍넘기게 된다. 서울시 측정기준 5000ppm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최근 출근길에 무리한 탑승으로 후문이 고장난 버스에 탑승한 적이 있었다. 문이 덜렁덜렁 열려 있는데 승객도 많은 상태여서 꽤 위험했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기사님이 운행 불가를 선언했다.

승객들 사이에서 볼멘 소리가 나왔다. 이유야 어찌됐든 출근길 방해를 받았으니 이해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나, 한번만 여유를 갖고 생각하면 그것이 안전불감증이었다.

지난 7월 광역버스를 대상으로 하는 입석 금지 제도가 부활했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안전사고 위험 방지를 위해 광역버스의 전 좌석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및 입석 금지를 시행했으나 승객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이번 입석 금지제 부활은 버스업체가 주도했다는 점에서 양상이 다르다.

주체가 누가됐든 과밀의 문제를 해소하려는 시도는 반갑다.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이다. 근자에 들어 유행하고 있는 ‘국평’(국민평수)이라는 말은, 과밀을 안일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자의식이 빚어낸 슬픈 풍경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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