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뭘 섞어도 규제 없는 합성니코틴 담배…미래가 병든다

  • 등록 2024-12-05 오전 7:12:02

    수정 2024-12-05 오전 7:12:02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액상형 담배의 원료인 합성니코틴을 규제하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글로벌 담배회사 BAT로스만스가 국내 규제 공백을 노리고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 ‘노마드’를 전세계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출시하면서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놓였던 합성니코틴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무인 전자담배 판매점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가 진열돼있다.(사진=연합뉴스)
현행 담배사업법은 연초 잎, 천연니코틴을 원료로 하는 담배만 규제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궐련 담배, 궐련형 전자담배, 천연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만 담배에 해당한다. 합성니코틴 액상형 전자담배는 연초 잎 대신 화학 물질을 합성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담배가 아니란 얘기다. 담배 규제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과세 의무나 경고 문구·그림을 부착할 의무가 없고 온라인 판매와 판촉도 가능하다.

BAT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노마드를 출시하는 이유에 대해 “합성니코틴 액상 담배와 천연니코틴 액상 담배에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하는 국가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라며 “규제가 없는데 출시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합성니코틴 담배에 대해 일반 담배와 동일한 규정이 적용돼야 한다는데 깊이 공감하며 합당한 규제 도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담배회사마저 규제 도입을 서둘러 달라는 데 정작 정부와 정치권은 신중에 신중을 더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업계에서는 합성니코틴을 사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달콤한 향과 맛으로 청소년 흡연을 야기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합성니코틴에 무엇을 섞어도 담배사업법에 적용되지 않는 ‘무법지대’라는 지적이다.

실제 부가가치세를 제외한 담배소비세·개별소비세·부가가치세·지방교육세 등 각종 세금과 국민건강증진부담금도 부과되지 않아 일반 담배보다 저렴하고 온라인 쇼핑몰과 무인 담배자판기에서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만큼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는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지난 21대 국회에도 발의됐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고, 22대 국회에서도 모두 10개 법안이 발의돼 있다. 정부는 합성니코틴 담배 유해성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최근 “합성니코틴도 연초 담배와 같은 규제가 필요하다”고 결론 낸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제1차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논의됐지만, 개정 시기에 대한 입장이 갈리면서 통과가 무산됐다. 여야 모두 규제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일부 반발을 우려해 공청회 개최 후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이번에도 합성니코틴 담배에 대한 규제가 해를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상 초유의 계엄령 사태에 대한 책임론을 두고 정치권 갈등이 심화되면서 민생 현안 논의는 뒷전이 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영국 하원은 만 15세, 2009년생부터 담배를 평생 살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1차 통과시켰고, 베트남은 내년부터 전자담배를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키로 하는 등 많은 나라가 담배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 흡연 확산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모색하고 있는 추세다.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합성니코틴 담배 유통에 따른 청소년 흡연 폐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전에 우리도 서둘러 규제를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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