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는 다수 지역구를 1개로 묶어 2명 이상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소선거구제와 달리 2등 이하에게도 당선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사표를 줄이고 지역주의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다만 최다 득표자가 아닌 당선자를 배출하는 만큼 지역 대표성을 흐린다는 문제점도 있다. 이런 점에서 특정지역만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헌법개정은 험난한 길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한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정치 개혁에 대한 ‘선점 효과’다. 국회의 무능과 불신이 극에 달하면서 싹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데 대통령이 화두를 먼저 제시하면서 여론을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고민도 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다시 여소야대 국면이 이어지면 사실상 국정 동력은 상실되고 개혁 과제는 성사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통령의 발언이 ‘지역에 따라’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들어간 건 수도권 공략을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절반의 의석이 걸려 있는 서울, 인천, 경기 수도권은 더불어민주당의 우세지역이라는 점에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여당 의석수를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더욱이 여론 이상으로 정치권의 호응이 필수적이다. 현직 의원들과 이해관계가 밀접한 선거구제 개편이 필요하고 헌법 개정까지 어어져야 하는 만큼 정치권의 공감과 협조 없이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정치권 반응은 냉랭하다. 대통령과 찰떡 호흡을 과시했던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나 여당 지도부 그리고 친윤 중진 의원들까지 중대선거구제에 적극적이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중대선거구제 개혁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재명 대표마저 다른 정치 개혁이 우선이라며 중대선거구제 도입에 대해 말을 아낀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일부 의원들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통해 중대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고 있지만 기득권을 가진 여야 의원 상당수는 요지부동이다.
정치권은 지난 수년간 국민들을 이념과 진영의 잣대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중대선거구제는 제도 그 자체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유권자의 분노와 좌절이 어우러진 경고의 메시지다. 국민의 요구에 순응하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국민들의 이해와 민생에 더 부합하는 구조로 만들 필요가 있다. 풍전등화의 위태로운 글로벌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는 길은 최고 수준의 정치 개혁을 달성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