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정전대란을 겪으며 사소한 정전에도 화들짝 놀라는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수급의 중추인 원전이 잇따라 멈춘 것. 전날 예비력이 8%까지 떨어지면서 불안감이 확산하니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한마디 한다면 실망하고 움츠러들 직원들을 생각하니 홍 장관은 걱정이 앞섰다. 시간이 다가오자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막상 업무보고가 시작되자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전 얘기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대신 "지경부 직원들이 열정과 능력이 충만하다"며 "능력만 있다면 소용없지만 열정에다 깊은 전문적 지식까지 갖췄다"고 추켜세웠다.
홍 장관도 "직원들 사기 꺾일까 우려했는데, 칭찬을 너무 많이 받아서 지경부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다"며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홍 장관을 더 흐뭇하게 한 것은 업무보고 뒤 이어진 80분간의 토론이었다. 올해부터 업무보고에서 장차관뿐만 아니라 현장의 일선 실무자들까지 참여한다. 20명의 토론 참석자 가운데 16명은 주무관이나 사무관 같은 젊은 공무원이었다. 이들은 대통령이나 장관 앞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고, 열띤 토론을 벌였기 때문이다.
뿌리산업을 담당하는 한 사무관은 "온종일 책상에서 일했더니 주변에서 진짜 뿌리 되겠다"는 말로 시선을 끌며 차분하게 자신의 논리를 펴기도 했다.
토론장에 있던 한 국장급 간부는 "주눅이 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게 인상적"이었다며 "장관도 그런 점들이 뿌듯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