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F-16과 F-15K를 넘어 F-35A 스텔스 전투기까지 보유한 우리 공군은 아직도 F-4와 F-5 계열 전투기를 100여대나 운용하고 있다. 30~40년이 지나 이미 수명이 다한 항공기들이다. 2000년 이후 공군 추락 사고 38건 중 20건이 이들 기종에서 발생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두 번째다. 19명의 조종사들이 귀한 목숨을 잃었다.
노후 기종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신형 전투기가 제때 공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형 전투기 개발사업(KF-X)이 부침을 겪은 탓이다. 이제 초기 비행 시험을 시작한 KF-21은 2026년부터 도입된다.
공군 수뇌부는 대안으로 F-4·5 계열 전투기의 퇴역 시기를 5년 더 늘렸다. 이미 박물관에 있어야 할 항공기가 아직도 날고 있는 이유다. 젊은 조종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한 비행은 그만큼 연장됐다. 물론 모든 항공기 사고가 기체 노후화 때문은 아니지만, 이 기종을 타야 하는 조종사와 그 가족들은 불안하기 마련이다.
F-4·5 사고 때마다 해당 기종을 빨리 퇴역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군 수뇌부는 전력공백과 예산 등의 이유로 수명 연장이라는 손쉬운 선택을 반복해 왔다. 전투기 해외 임대나 작전 개념을 바꿔 적정 대수를 수정하는 등의 다른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다.
공군 지휘부는 언론의 잇딴 노후 기종 운용 지적에 ‘노후 전투기’가 아닌 ‘장기 운용 항공기’라고 강조한다. 어감이 좋지 않다는 이유다. ‘노후’(老朽)는 제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낡고 오래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F-4·5 계열 전투기는 그런 상태다.
이유야 어쨌든 군 당국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조종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꼴이 됐다. 그 책임은 당연히 국방부와 공군 수뇌부에 있다. 그런데도 군 수뇌부는 이해관계자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호소하는 간절함은 보이지 않는다. 장기 운용 항공기가 말장난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 F-4E 전투기가 임무를 위해 이륙하고 있다. (사진=공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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