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경제 원로이자 금융통화위원 4년차인 조윤제 위원은 6월초 이창용 한은 총재를 포함한 한은 임직원을 대상으로 ‘대전환 시대, 한국 경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한은의 역할에 대해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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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정부 관리에 좌우되는 물가…한은 역할은
우리나라 물가 구조를 살펴보면 국제유가 등 국제 환경에 의해 크게 좌우될 뿐만 아니라 유독 다른 나라 대비 정부 관리물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원유 등 원자재 수입국 특성상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가 안정된다.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상승하고 이는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로 전해지며 물가 불안이 초래된다. 2008년, 2011년 국제유가 급등기 때 나타났던 현상이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급망까지 망가지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도 고물가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무상보육, 무상급식, 통신료 등이 정부가 가격 결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관리물가’로 분류된다. 관리물가는 전체 물가지수 내 458개 품목 중 40개 품목이고 이들의 가중치는 약 20%로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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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물가는 통상 수요에 의해 좌우돼 한은이 금리를 조정해 다스릴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여겨지고 있지만 의사록에 따르면 근원물가가 소비, 내수보다 공급 요인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보는 금통위원도 있다. 이 위원은 근원물가 상승에 한은이 통화정책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석유가격 떼고, 정부 관리물가 빼고, 이제는 근원물가까지 공급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면 한은이 추구하는 물가안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가에 대해 더 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2021년 8월을 시작으로 1년 반 동안 역사상 가장 빠른 금리 인상을 시도했음에도 한은이 금리를 통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근원물가’가 빠르게 둔화되지 않고 있으니 이런 의문은 더 커진다.
수단은 기준금리인데…금리보다 더 힘센 한전채
조 위원은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유효성 확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환경이 녹록치 않다는 평가다. 2011년 금융안정이 한은법에 추가됐지만 한은은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돼 있는 중앙은행이다. 한은은 독립적으로 개별 금융기관을 감독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기관에 유동성 사고가 터졌을 경우에는 ‘최종대부자’로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이제는 증권 등 비은행 금융기관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에 대해서도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조 위원은 “감독과 통화정책이 분리된 중앙은행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특징도 있다. 조 위원은 “우리나라는 준재정 뿐 아니라 LH공사, 수자원공사, 주택금융공사 등, 이들이 발행하는 (공공)기관채가 시중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지 않냐”며 “통화정책 유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과 협의해야 하고,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부 등과 공공기관채, 국고채 발행에 대해 협의해야 한다. 그래야 한은의 통화정책 유효성이 확보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는 작년 9월말 강원도 레고랜드 관련 부도 사태 당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강해지며 은행채, 한국전력채 등이 시장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수 차례 올리면서도 단기자금을 제대로 쪼이지 못했는데 한전채 등이 한꺼번에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과도할 정도의 ‘긴축’ 상태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뒤 한은은 오히려 금리 인상기임에도 단기 유동성을 풀어서 대응해야 했다.
조 위원의 발언들은 우리나라 통화정책 운용이 우리나라 특성에 맞게 정립돼야 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더 이뤄져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만의 물가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한은이 할 수 있는 물가안정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기준금리를 조정하더라도 금리 결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연구 방식을 따라해서는 얻을 수 없는 값이다. 이는 어느 한 금통위원의 고민이 아니라 사실 한은과 금통위원 모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