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80일 된 딸을 안고 병원을 찾은 김모(21)씨가 한숨을 쉬며 토로했다. 딸에게 신경 이상 증상이 있어 장애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에 진료 예약을 했고 한 달 만에 겨우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소아신경외과의 경우 이른바 ‘빅5’ 등 주요 병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데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우면서 대기가 길어진 탓이다. 김씨는 “진료가 좀 원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병원 이탈이 2주째로 접어들면서 환자와 보호자,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마지노선’으로 정한 지난달 29일 이후 복귀하지 않은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 수순을 밟겠다고 선포했고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정부와 크게 싸우겠다”고 반발하고 있어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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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은 일주일 전보다 눈에 띄게 한산했다. 전공의의 부재로 경증·외래환자가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면서다. 하지만 김씨의 사례 처럼 중증 환자와 보호자들은 전공의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의사를 만나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피로가 누적되고 있는 것은 전공의의 공백을 채우고 있는 남은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의 한 외상외과 의사는 “전공의는 전혀 안 돌아왔다”며 “앞으로 1~2주는 버틸 수 있겠지만 업무 과부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50~60대 교수님들도 매일 당직을 선다”며 “비상대책회의를 하고 있지만 전공의나 펠로우(전임의)가 없으니 변하는 게 없다”고 했다. 같은 병원의 정형외과 의사는 “지난달에 전임의가 17명 있었는데 입대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많이 떠났다”며 “잘 돌아가던 곳인데 갑자기 이렇게 돼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기준 주요 100개 수련병원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는 총 8945명(전체의 72%)이라고 밝혔다. 이 중 복귀한 전공의는 696명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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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마지노선 제시에도 현장으로 복귀하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면허정지’라는 초강수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박 차관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면 최소 3개월의 면허정지 처분이 불가피하다”며 “이 처분을 받으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늦춰지고 앞으로 각종 취업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 역시 의협 간부들에 대한 본격적 수사에 나선다. 앞서 지난 2일 의료법 위반 및 형법상 업무방해, 교사·방조 등의 혐의로 고발된 의협 전현직 간부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한 경찰은 오는 6일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을 소환 조사하는 등 수사 절차를 밟아갈 방침이다. 우종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토요일 일부 의협 간부 사무실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했고 출석도 요구한 상태”라며 “절차에 따라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의 행보에 대해 의협은 “전공의들이 실제로 불이익을 받는 순간 분노가 극에 달해 정부와 크게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주 위원장은 “(정부의 행정처분 및 수사 등) 이런 행태는 의사들과는 더 이상 대화와 타협할 생각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고 희망을 잃은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더 이상 의사로서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행동”이라며 “지금 정부가 나아가는 길은 절대로 의료 개혁의 길이 아니며, 국민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길도 아니다”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