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등록금 인상 확산 조짐
수도권의 A사립대 교수는 9일 “올해로 17년째 등록금 동결인데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등록금 동결은 어렵다”며 “교내 등록금심의위원회에 참여한 학생들도 인상에 합의했다”고 했다. A대학은 올해 약 4%대에서 등록금을 올리기로 잠정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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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등록금 동결 정책이 흔들리게 된 가장 주된 원인은 고물가에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에 따라 대학들은 최근 3개 연도 물가상승률의 1.5배 이내에서 등록금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도 등록금 인상 한도가 5.64%까지 치솟자 교육부의 동결 요청에도 4년제 대학 26곳이 등록금을 올렸다. 올해는 이보다 2배인 50개 대학 이상이 등록금 올릴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가 151개 회원 대학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 대학 90곳 중 53.3%인 48곳에서 ‘올해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논의하고 있다’고 응답한 38곳(42.2%) 중에서도 일부 대학은 인상 대열에 가세할 전망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26개교의 인상에도 지난해 대학 평균 등록금은 682만7300원으로 전년(679만4800원)보다 0.5%(3만25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탄핵정국으로 현 정부의 국정 장악력이 약화한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지난 8일 국가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국총협)와 영상 간담회를 열고 “엄중한 시국에 국립대에서 등록금 동결에 참여해 모범을 보여달라”고 당부했지만 총장들은 “신중히 검토한 뒤 최종 입장을 결정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정부로부터 국고를 지원받는 국립대조차 동결 대열에서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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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총협 설문조사에서는 17년째 이어진 등록금 동결로 인한 어려운 점(복수 응답)을 묻자 97.8%(88곳)가 ‘첨단 실험·실습 기자재 확충·개선’을 꼽았다. 이어 96.6%(87곳)는 ‘우수 교수·직원 충원’이, 94.5%(85곳)는 ‘학생복지 개선’이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이유로 각 대학 등록금심의위원에 참여하는 학생들도 학교 측의 등록금 인상 계획에 쉽게 반대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A대학 관계자는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학생 대표들도 교육·복지 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간접 규제를 풀어 법정 한도 내에서 등록금 인상을 결정하는 대학에는 국가장학금 차단 등 불이익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록금을 17년째 묶어놓다 보니 대학 교육·연구에도 심각한 지장이 초래되고 있다”며 “우수 교수를 확충하려고 해도 이를 못하는 게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법으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의 등록금 인상 대학에는 불이익을 없애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사총협 사무총장도 “대학 운영 전 분야에 걸쳐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되고 있다”며 “정부가 등록금에 대한 간접 규제를 풀어 법정 인상 한도까지는 대학별 판단에 따라 인상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