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BMW도 美떠난다…무역전쟁, 트럼프의 오판?(종합)

할리데이비슨·테슬라 등 美제조업 ‘엑소더스’ 가속화
BMW, 中생산 확대·美생산 축소…테슬라, 中에 공장 설립
트럼프의 자신감…‘대공황’ 우려에도 ‘관세폭탄’ 강행
  • 등록 2018-07-11 오후 6:25:41

    수정 2018-07-12 오전 7:34:44

(첫째줄 오른쪽부터) 10일(현지시간) 독일 템펠호프 공항에서 BMW의 하랄트 크뤼거 최고경영자(CEO)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리커창 중국 총리에게 BMW 전기차 i3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독일 자동차 회사 BMW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 공장 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시설을 해외로 옮기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아쇠를 당긴 ‘관세폭탄’이 원인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중국이나 유럽연합(EU)이 더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며 무역전쟁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할리데이비슨에 이어 테슬라, BMW 등까지 제조업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는 양상이어서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위기를 맞고 있다.

BMW, 中생산 확대…美생산은 축소

블룸버그통신과 더힐 등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지역신문인 ‘포스트앤큐리어’를 인용, BMW가 높아지는 관세 부담을 덜기 위해 스파르탄버그 공장 내 SUV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BMW가 전날 중국 합작사 브릴리언스 오토모티브그룹 홀딩스와 현재 45만대 수준인 연간 생산량을 내년까지 52만대로 늘리기로 합의했는데, 이를 위해 미국 생산을 축소하기로 했다는 설명이다.

생산시설을 어느 곳으로 옮길 것인지, 또 전부 옮길 것인지 일부 축소인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중국 내 생산량을 확대키로 한 만큼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하랄트 크뤼거 BMW 최고경영자(CEO)는 브릴리언스 측과 계약을 마친 뒤 “중국에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틀을 마련했다”면서 “미래 투자와 성장, 전기차 생산에 공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지난 1일 수입차 관세율을 25%에서 15% 낮췄다. 하지만 미국이 6일 340억달러(약38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 중국도 미국산 자동차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엔 관세만 40%가 붙는다는 얘기다.

이는 BMW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회사는 미국 내 생산기지를 축소하는 동시에 중국에서 판매되는 미국산 SUV는 가격을 올리기로 했다. 40% 관세 충격을 흡수할 수 없어서다. BMW는 다만 “브릴리언스 오토모티브 측과의 합작은 향후 중국 내수 시장 확대를 위한 것이지, 미국 스파르탄버그 공장 이전과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BMW가 미국에서 생산해 중국에 수출하는 차량에 40% 관세가 부과되면, 경쟁업체들이 유럽에서 생산해 중국에 판매하는 차량보다 가격이 비싸진다”고 지적했다. BMW의 결정이 무역전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한편으론 미국에서 물건을 생산해 중국에 팔려는 모든 기업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의미기도 하다.

/ AFP PHOTO
미국 내 제조업 ‘엑소더스’ 가속화

BMW는 독일 회사지만 가장 많은 ‘미국 제조 차량’을 수출하는 제조업 기업이다. 미국 사우스카롤라이나주 스파르탄버그에 위치한 BMW 공장은 당초 세계 최대 SUV 시장인 미국 시장을 겨냥해 지어졌다. 설립 후 26년이 지난 현재는 생산 물량의 70% 가량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BMW는 지난해 이 공장에서 X시리즈와 SUV 등 총 38만5900대의 차량을 생산했고, 이 중 8만7600대는 중국으로, 11만2900대는 유럽으로 각각 수출했다.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두 지역에 수출한 물량을 합치면 약 52%로 과반을 넘는다.

문제는 미국을 떠나려는 회사가 BMW뿐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장 먼저 미국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제조업 기업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을 대표하는 오토바이 업체 할리데이비슨이다. 할리데이비슨은 지난 5월말 생산기지를 태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할리데이비슨을 맹비난했다. ‘아메리칸 스타일’을 대표·상징하는 기업이 ‘아메리카 퍼스트’를 표방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셈이어서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인 테슬라도 이날 중국 상해에 연간 5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짓기로 확정했다. 테슬라의 해외 공장 중 최대 규모다.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인 중국을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테슬라는 지난 8일 관세 40%를 반영해 중국 내 소비자 가격을 20% 가량 인상했는데, 가격경쟁력 약화를 좌시할 수 없었던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된다. 테슬라는 지난해 전세계 판매량의 약 15%인 1만7000대를 중국에서 팔았고, 중국 내 매출액도 연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 이상이다.

포르쉐 최고경영자(CEO)이자 폴크스바겐그룹 생산책임자인 올리버 블룸은 지난 2일 파이낸셜타임스에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현지화가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라면 언제든 생산기지를 미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PHOTO)
트럼프의 자신감…‘대공황’ 우려에도 ‘관세폭탄’ 강행

무역전쟁 방아쇠를 당긴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전쟁이 ‘승자 없이 모두가 죽는 게임’이라는 비판과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대공황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라며 미국이 촉발한 무역전쟁이 경제 공황을 야기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특히 투자 감축 및 일자리 축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BMW 스파르탄버그 공장에선 약 1만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데, 생산을 줄이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설명했다. 볼보 역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인근 공장 설비투자를 확대, 직원수를 기존 1200명에서 4000명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유보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앞서 미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 제너럴모터스(GM)는 무역전쟁으로 자동차 가격이 오르면 자동차 수요가 줄고, 생산량 감소로 이어져 결국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볼보와 다임러 등도 무역전쟁에 취약한 기업”이라며, 이들 기업이 당장은 미국 내 공장을 폐쇄하거나 해외 이전은 힘들더라도 계획했던 투자를 재고할 가능성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6월 회의록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 결정 이후 기업들은 이미 일부 투자를 유보하거나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날 2000억달러(약 223조원) 규모의 중국 제품에 10% 추가 관세를 물리기로 했다. 중국과 EU의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주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는 지난 2016년 대선 유세 시절부터 ‘공평한 운동장 위’에서의 무역을 강조해 왔다.

이에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너무 과도하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캐빈 브래디 하원 세입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얼굴을 맞대고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며 ‘대타협’을 촉구했다. 데이비드 프렌치 전미소매협회(NRF) 부대표는 “미국 소비자와 가정에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난폭한 전략”이라며 “이제 미국 경제에 미치는 위협은 ‘만약’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와 ‘얼마나 나쁠지’에 대한 문제가 돼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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