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네이버·카카오에게 억울하기만 한 일일까

  • 등록 2020-09-09 오후 7:57:33

    수정 2020-09-09 오후 7:58:44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정부가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인터넷 기업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수단을 갖추라’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입법 예고하자, 공짜로 국내 첨단 통신망을 쓰는 구글과 넷플릭스 등 외국 회사뿐 아니라 네이버와 카카오까지 불필요한 규제를 받게 됐다는 여론이 적지 않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를 통해 성명서를 내고 ‘자의적 규제’라며 불만을 드러냈고,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어제 국회에서 “서비스의 안정성에 대한 의무는 ISP(통신사)가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부가통신사업자에게 떠넘겼다”며 “게다가 해외 사업자(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는 감시하기 어려워 국내 사업자들만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네이버·카카오에 부과된 것은 ‘서비스 안정성’ 의무

이런 주장이 전혀 공감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망의 품질을 유지하는 의무는 통신사에 있죠. 그래서 정부는 매년 통신품질조사를 통해 통신사들이 제대로 투자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순위를 국민에게 공개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의무를 주겠다는 건 망의 품질이 아닙니다. ‘서비스 안정성’, 즉 ‘서비스의 품질’을 의미하죠.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톡이 지연이나 불통 없이 서비스되도록 일정 규모 이상 되는 큰 인터넷 기업들은 좀 더 신경 쓰라는 의미입니다.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요.

그래서 시행령에는 ‘서비스 안정수단 확보에 중대한 변동이 생기면 상담을 제공할 수 있는 연락처 등을 이용자에게 고지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네이버나 카카오는 그래도 낫지만, 2017년 페이스북 사태를 돌이켜보면 당시 페북과 국내 통신사가 망이용대가를 두고 싸우면서 페북이 맘대로 접속경로를 바꿔 이용자들은 아무런 고지 없이 수개월 동안 접속 지연이나 끊김을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런 일들이 사라지게 되죠.

시행령상 의무는 이미 하고 있는 일들

물론 서비스 안정성을 지키려면, 통신사와 트래픽에 대해 협의하고 서버보안 관리, 트래픽 모니터링 등을 해야 하는 불편은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이미 네이버와 카카오가 하고있는 부분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네이버와 카카오의 대관 임원들과 4차례(각각 5시간) 정도 협의했는데, 이 때 네이버·카카오가 “이미 하고 있다”면서 제시한 문서에도 ▲서버보안 관리 ▲트래픽 모니터링 ▲서비스 장애 대응 체계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용자에게 좋고, 지금까지 스스로 잘해왔던 일을 정부가 들여다본다는 사실만으로 네이버나 카카오가 지나치게 민감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망이용대가가 늘어나는가?..그것도 아냐

그렇다면 혹시 시행령 때문에 네이버와 카카오가 통신사에 내는 망 사용료가 늘어날까요?

시행령안에는 망 이용대가 지불을 강제하는 조항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네이버는 그간 언론에 “우리는 망대가를 700억원 정도 내는데 반해, 구글은 한 푼도 안 낸다. 역차별”이라고 언급해왔는데, 사실 이 700억원에는 국내 통신사에 주는 돈외에도 국제 회선료,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비용이 포함돼 있습니다.(2018년 신용현 의원실에 네이버가 제출한 자료).

그런데 당시 기준으로 이 700억원이란 돈이, 네이버가 지불하는 총 망 이용대가가 시행령으로인해 증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건 네이버도 인정하고 있습니다. 네이버는 이미 자체 인터넷데이터센터를 통해 여러 통신사 회선을 갖다 쓰기 때문에, 통신사와 계약하고 있기 때문에, 망 비용 측면에서 시행령으로 변하는 건 없다는 것이죠.

게다가 정부는 네이버·카카오와의 협의과정에서 ‘서비스 안정성 확보 조치 의무’의 범위를 ‘자신의 권한과 책임 범위 내에서 하는 조치’로 바꾸는 등 인터넷 업계 의견을 받아 초안을 고쳤습니다.

▲출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 규제 강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 아닐까


그럼에도 네이버와 카카오는 왜 반발할까요?

카카오 고위 관계자는 “자료도 낼 수 있고 다른 일도 할 수 있는데 자꾸 통신규제 속으로 인터넷 기업들을 끌어들이는 것 같아 두려움이 크다”고 했습니다.

공감 가는 말입니다. 국내 인터넷 기업들이 창의성을 기반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무규제’ 내지는 ‘무관심’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부가통신사업 전반에 대한 규제 강화를 우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일 평균 이용자 수가 7천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나 6700만 명에 달하는 카카오가 ‘서비스 안정 의무’ 자체를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건 안타깝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검색과 SNS를 넘어 커머스, 금융, 유통에 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국민생활플랫폼이기에 그렇습니다.

스타트업처럼 ‘자유로운 기업 문화’도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이용자 보호나 이용자 편익을 높이는 일에는 좀 더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합니다. 대한민국 정부를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면요.

불과 몇달 전 N번방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 네이버와 카카오는 인기협을 통해 강하게 반발했지만, 지금은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가 잘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카카오는 법적 규제가 시작되기도 전에, 운영정책을 만들어 ‘성착취 및 아동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금지 조항’을 명문화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도 마찬가지였으면 합니다.

무조건 반대하고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입법 예고 기간 중 꼭 바꿔야 할 독소 조항을 중심으로 정부에 건의하고, 정부 역시 두 회사 의견에 귀 기울여 합리적인 방안을 찾았으면 합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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