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방송에서 은호의 든든한 어깨 덕분에 쓰러질뻔한 위기를 탈출한 지윤은 단골 분식 포차로 향했다. 매번 먹었던 고수들만 도전한다는 ‘디지는 맛’ 5단계 떡볶이를 주문, 머리를 질끈 묶고 전투적 먹방을 시전했다. 은호에게 “내가 필요한 비서는 내가 시키는 것만 하는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던 것도 사과하며, 잘해보자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나 매운 걸 못 먹는 은호는 호기롭게 떡볶이를 입에 넣었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묵 국물에 입을 뎄다. 극강의 매운맛에 어쩔 줄 모르며 정신이 혼미해진 은호를 보며 지윤은 처음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지윤이 은호에 대한 적대감을 지워낸 자리엔 다른 감정들이 자리 잡았다. 은호가 건넨 달콤한 청포도 사탕을 보며 그의 품에 쓰러져 안겼을 때의 따스한 온기를 떠올렸고, 차를 헷갈려 남의 차에 올라타려는 자신을 막아서는 은호와 잠시 손이 스칠 땐 안 그런 척해도 한껏 그를 의식했다. 직접 피자를 사와 야근하는 직원 케어까지 나선 은호를 보며 역시나 안 맞는다 혀를 내두르다가도, 자신의 동선을 모두 꿰고 필요한 물건들을 그 자리에 미리 배치해놓고 향긋한 라벤더로 대표실에 안정감까지 더한 세심한 배려엔 미소를 지었다.
혜인이 정원과의 사적인 관계로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의심에 ‘피플즈’의 고심도 길어졌다. 그때 은호가 두 사람에게 직접 확인해보자고 제안했다. 한수전자 인사팀에서 여러 루머를 대응했던 은호는 대부분 거짓이었던 소문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게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다. 알고 보니 정원과 혜인의 관계도 항간의 소문과 달랐다. 손목 신경 수술을 받은 후 문제가 생긴 정원을 혜인이 도왔고, 셰프에겐 치명적인 이 사실을 혜인만 알고 있었다.
정원과 혜인 모두 알맞은 곳으로 이직시키며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지윤과 은호. 이제 헤드헌팅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은호는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주는 이 일이 의미있고 멋있게 느껴졌다. 그런 은호의 진심에 지윤도 덩달아 흐뭇했다. 그런데 맑은 하늘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것도 예측했다는 듯 은호는 야심차게 어린이 캐릭터가 가득한 핑크 우산을 꺼냈다.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지윤은 또다시 웃었고, 같은 우산 아래 두 사람의 물리적 거리는 한껏 밀착됐다.
SBS ‘나의 완벽한 비서’ 4회는 11일 토요일 오후 9시 50분에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