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 소득 따라 식당 밥값도 차등…파리의 노인지원제도 보니

[대한민국 나이듦]④
건강·경제력 등 고려한 노인주거시설
‘자택 거주’ 원하면 임대료 부담도 낮춰줘
“건강하게 살다 갈 수 있게 지원 더 해줬으면”
  • 등록 2023-06-28 오전 5:10:00

    수정 2023-06-28 오전 8:29:53

프랑스 파리의 노인들을 위한 식당 ‘에머로드’ 내부(왼쪽).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는 이들.(사진=김미영 기자)
[파리=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혼자 와도 밥 먹으면서 새 친구들 사귀고 얘기할 수 있으니 좋지, 식사도 만족스럽고.”(84세 여성 레나)

지난 5월 11일,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 거리 인근의 노인공동주택. 이 주택 1층엔 은퇴한 노인들을 위한 식당인 ‘에머로드’(Restaurant Emeraude)가 있다. 파리 시에서 관리하는 에머로드는 이곳을 포함해 시내에 42곳이 있었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저렴한 가격에 질 높은 식사를 하면서 동년배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날의 점심 메뉴는 전식으로 크림 오이 혹은 야채스프, 본식은 카레소스 닭다리볶음탕 혹은 대구살 필렛, 후식은 바닐라 초콜릿 소스의 과자가 나왔다. 식당에 온 이들은 시청에서 발급 받은 에머로드 카드를 내민 뒤 음식을 받아 천천히 식사를 했다. 자전거를 끌고 식당에 온 레나씨는 “파리엔 이런 식당이 여러 곳 있기 때문에 돌아다니면서 식사를 한다”며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 식당 직원인 알리씨는 “시에서는 노인들의 은퇴 전 소득을 따져서 식사가격을 차등 책정한다”며 “보통 한 끼에 5~8유로(한화 7000~12000원) 정도”라고 했다. 알리씨는 “점심엔 보통 노인 80여명이 찾고, 저녁은 노숙자 등에게도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100인분 정도의 식사를 준비한다”며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의 장소,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되는 곳”이라고 강조했다.

파리 거리에선 ‘토박이’ 노인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세계적 관광도시이자 물가도 비싼 파리에서 이들이 은퇴 후에도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을 수 있는 데엔 에머로드와 같은 정부 차원의 사회서비스들도 한몫했다. 획일적이지 않은, 노인들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감안한 서비스다.

끼니 못지않게 중요한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서 프랑스는 자립생활이 가능한 이들을 위한 노인주택 등은 물론, 의료시설을 갖췄거나 병원서비스가 제공되는 주거시설 등 노인주거시설을 갖췄다. 건강 상태와 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선택해서 머무를 수 있다. 나이 들어서도 살던 곳에 계속 살고 싶어하는 노인들의 자택 거주를 돕는 방편들도 있다. 경제력이 낮은 노인엔 주거보조금을 제공하거나, 임대인의 재산권을 다소 제한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기존과 같은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노인 건강상태가 좋지 않아 집안일 등을 할 수 없는 경우엔 가사보조금도 준다. 사회복지 시설이나 병원에서 노후를 맞기를 꺼려 집안에서 홀로,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도 노인 이동을 돕는 교통비 지원을 하고 있다. 파리시의 경우 저소득층 노인에겐 무료 교통권을 지급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며, 이들 외 노인엔 일정 부분 할인을 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파리가 노인들이 살기 좋은 최적의 도시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파리는 도시 역사만큼 건물들도 대체로 오래돼 이동 편의를 위한 엘레베이터, 경사로 등이 설치돼 있지 않고, 집안엔 문턱이 남아 이동 편의성과 안전을 더 보완해야 한단 목소리가 있다. 이 때문에 파리시와 민간단체 등에선 꾸준히 노인들에 필요한 주택 개보수사업을 하고 있다.

파리에서 만난 70대 보헴 씨는 “정부와 시에서 노인들 배려를 많이 하고 있지만 더 많이 있어야 한다, 건강하게 살다 죽고 싶다는 욕구를 채워줬으면 한다”며 “한국은 프랑스에서, 프랑스는 한국에서 좋은 제도를 서로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통·번역 도움=한국외대 장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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