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로봇이 챙기고 전쟁은 인간끼리 할 수도…

'자동화'에 따른 일자리 소멸 못 피해
대량 실업 사태, 극빈층 전략 불 보듯
'기본소득' '인간적 자본주의'가 대안
▲보통 사람들의 전쟁|앤드루 양|368쪽|흐름출판
  • 등록 2019-01-30 오전 12:25:17

    수정 2019-01-30 오전 12:28:54

기계·로봇·자동화가 사람을 대체하는 흐름은 이젠 막아낼 수가 없다. 인간이 지켜온 일자리의 소멸은 수순이란 뜻이다. 자율주행차는 그중 가장 평범한 사례 중 하나. 저자 앤드루 양은 자율주행차가 굴러다니는 순간 미국에서만 220∼310만개의 기사일자리가 사라질 거라고 했다(사진=AP/뉴시스).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 직장에 다니는 두 동료. 여기 같은 공간에 그 둘이 있다. 입사 동기라지만 일하는 행태와 방식은 극과 극이다.

한 친구는 입사하자마자 고차원의 업무에 바로 투입됐다. 지금껏 실수하는 걸 본 적이 없고 남들은 한 번씩 겪는다는 슬럼프도 없다. 지시한 내용은 칼처럼 끝낸다. ‘상사의 말씀’에 토를 다는 반역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근태는 또 어떤가. 지각·결근은 아예 없고 연차도 안 쓴다. 가끔 ‘재충전’이 필요하긴 하다. 일종의 업데이트를 위한 과정이라고 할까.

다른 친구는 지금 정도까지 오는 데도 몇 년이 걸렸다. 인턴·수습과정까지 고르게 거쳤다. 그런데도 크고 작은 실수가 빈번하다. ‘아차’ 하는 순간 벌어지는 것만이 아니다. 어젯밤 마신 술, 한 달쯤 된 연인과의 이별 등 사생활에도 영향을 받는 듯하다. 지시받은 일에는 자주 단서가 붙는다. 왜 해야 하는지, 굳이 나여야 하는지 따져대길 좋아한다. 일을 시작하는 덴 예열이 필요하고 마무리엔 ‘다른 손’이 도와야 한다. 그런데도 휴일에는 쉬어야 한단다. 모두가 바빠 정신이 없는 때도 연차를 ‘즐겨’ 낸다.

자, 내친김에 고민을 좀 더 해보자. 당신이 이 둘 중 하나를 고용해야 하는 경영자라면 누구를 선호하겠는가. 경영자라면, 게다가 불확실성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인 경영자라면 답은 뻔한 거 아닌가. “앞의 친구요!”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알아챘겠지만 앞의 친구는 로봇이다. 뒤의 친구는 보통사람이고. 그런데 어쩌나. 인간끼리의 의리와는 상관없이, 시장에서 최고 덕목인 효율성은 보통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로봇에겐 있는 품질보증서가 인간에겐 없지 않은가.

변호사 출신 기업가로 지난 11년간 10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일했던 저자가 로봇과 어쩔 수 없이 대립국면에 놓인 인간의 현실을 일깨운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직할 수 있는 상황’을 경고하고 나선 거다. 책에는 인수인계를 로봇에게 해주고 나와야 하는 그림이 더 이상 공상과학이 아니란 ‘빨간불’을 시종일관 번쩍인다. 배경은 미국. 그냥 미국이 아니라 한국 상황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미국이다. 특히 기술이 끼어든 노동시장의 변화가 하루가 다른 국면에서.

△일자리, 잔치는 끝났다

다보스포럼이라 부르는 세계경제포럼이 2016년 내놓은 ‘미래일자리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 이슈와 맞물리며 수시로 등장하는 단골레퍼토리다. 세계고용의 65%를 차지하는 주요 15개국에서 2020년까지, 당시로썬 4년 내에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거란 선전포고를 날렸더랬다. 엄밀히 따지면 실종할 일자리는 710만개다. 그나마 4차 산업혁명이 선물한 200만개의 새로운 직업 덕에 이 정도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치의 장난일 뿐, 핵심은 사라지는 710만개에 있다. 거기서 빠져나온 실직자가 200만개로 고스란히 편입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으니까. 결국 기술·로봇에 밀려 양산된 실직자는 끝까지 실직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저자는 이 불난집에 기름까지 들이부었다. 자율주행차가 굴러다니면 미국에서만 220만∼310만개의 기사직이 없어질 거란, 2016년 말 백악관 발 보고서를 붙인 거다. 조짐은 진작 나타났다. 미국서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노동자 중 새 일거리를 찾지 못한 40%는 어찌 됐을까. 안타깝지만 대부분은 극빈층으로 떨어져 정부가 주는 장애급여를 신청했더란다. 이를 두고 저자는 “화물차 기사가 일자리를 잃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보여주는 지표”라고 못을 박는다.

결국 인간이 기술·로봇과 경쟁해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믿을 만한 구석은 ‘자동화하기 어려운 일’이라 했다. 그중 하나가 ‘서비스’ 분야. 사람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일 말이다.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 하지만 무턱대고 그것만 들이댈 것도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쓴 ‘호모데우스’의 한 구절을 보자. 택시기사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기도, 오페라를 듣고 눈물짓는 등 로봇기사가 못 하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더랬다. 그런데 말이다. 택시기사의 이런 행태가 승객을 옮기는 택시 본연의 역할과 무슨 상관이냐는 얘기다. 더 냉정하게 말해 풍풍 풍기는 인간미가 사람기사를 채용하는 덕목 축에나 들겠나.

더욱 우려스러운 건 멀지 않은 내일 벌어질 ‘전쟁’이다. 로봇에게 일자리가 대거 몰리는 건 기정사실이고, 남은 일자리를 차지하려 인간끼리 벌이는 전쟁. 인간의 적이 로봇인 줄 알았더니, 아니 로봇이 분명한데 싸움박질은 인간세상의 몫이 돼버릴 수도 있단 말이다.

△일자리 소멸은 수순…안전장치는 ‘기본소득’

무슨 대책이 있겠나.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흐름은 이젠 막아낼 수가 없다. 일자리 소멸은 수순이란 뜻이다. 이때 저자가 머리를 짜낸 대안은 두 가지.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것이 하나, 인간적 자본주의만이 살 길이란 것이 또 하나. 국민 전체에 보편적 보장소득을 주자는 ‘기본소득’을 저자는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로 나아가는 필수조건으로 본다. ‘인간적 자본주의’는 그 ‘지속가능한 새로운 경제’가 될 모양이다. 복지·가치실현의 극대화를 꾀하는 형태를 말한다니. 예컨대 수익을 더 올리려고 이미 탑승한 승객을 끌어내는 항공사는 되지 말자는 소리다. 사람 낫게 하자는 약을 사람이 살 수 없을 가격에 팔지도 말고. 어째서? 자동화로부터 인간을 지키자는 안전장치니까. 정치견해의 문제가 아니고 기술발달의 문제니까.

미국의 민낯인지 한국의 자화상인지 헷갈리는 부분이 적잖다. 정신 차리라는 경고,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속 개구리’ 대목에선 미국 개구리와 한국 개구리가 연합해야 할 듯한 분위기도 나온다. 결국 저자는 인간이 해야 할 중대한 일 한 가지를 보탠 거다. 유독 인상 깊은, 탄식 같은 한 줄은 “기계는 힘이 없다. 제도가 중요하다.” 책의 마지막 줄에서 “함께 힘을 모아 싸우자” 했던 실체를 미리 드러낸 게 아닌가. 역시 전쟁의 대상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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