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돋보기]디폴트옵션 성공의 조건

  • 등록 2022-07-18 오전 6:15:00

    수정 2022-07-18 오전 6:15:00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도입됐다. 근로자가 스스로 연금을 운용하지 않으면 전문가가 대신 운용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지만 엄연히 남의 재산을 마음대로 운용하도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갈까. 손실이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거꾸로 연금운용에 도대체 어떤 절박함이 있었기에 미국, 영국, 호주 같은 연금 선진국이 이런 극단적인 제도를 도입한 것일까. 이 질문을 이해해야 왜 선진국에서 디폴트옵션이 성공했는지, 간접동의만으로 투자결정권을 강제 이전하는 극약처방의 디폴트옵션제도를 왜 도입했는지 알 수 있다. 답은 근로자의 고질적인 연금운용에 대한 무관심이다.

DB형 연금에 재정위기가 닥치자 DC형을 육성했지만, 정작 무심한 근로자 앞에서 DC형 발전은 한계가 있었다. 행동경제학은 무관심과 행동편의는 관성적 경향이 있고 교육으로 잘 교정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지난 몇 년간 유례없는 자산시장 활황과 초저금리 속에서도 1% 대 원리금보장상품에 고집스러우리만큼 묻어두던 관성적인 무관심의 힘을 생각해보라. 강한 외부충격이나 강제가 없으면 관성은 지속된다.

선진국 디폴트옵션제도의 핵심은 관성을 끓어 내기 위해 단호하고 반강제적인 투자결정권의 전환, 선택권의 제한에 있다. 일정한 요건 아래 예외 없이 투자결정권을 이전하는 조건부 지배구조의 전환이 그 본질이다. 직접 동의 없이 노티스(notice)라는 간접 동의만으로 투자결정권의 반강제적 이전을 허용했다. 가령, 20세 근로자인 경우 주식비중 90% 내외의 2060 TDF에 전문가가 자동으로 투자하는 식이다. 그리고 은퇴할 때 필요한 연금자산은 예금이나 개별주식 단품이 아닌 포트폴리오로 장기 운용해야 한다는 포트폴리오투자원칙을 단호히 제도에 적용했다. 이같은 단호함과 반강제성이 있었기에 선진국의 디폴트옵션제도는 무관심과 연금운용의 악연을 끓어내고 초저금리시대를 이겨내고 금융위기도 이겨내며 DB형보다 높은 수익률을 만들 수 있었다.

아쉽게도 한국형 디폴트옵션 규정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관성을 끓어 내는 단호함이 강해 보이지 않는다. 정의 그대로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가 디폴트옵션인데, 무심한 근로자에게 선택권이란 이름으로 세부적인 사항까지 선택하게 하는 역설이 단적인 예다. 성격이 다른 유형, 가령, 원리금보장, TDF, 혼합형펀드 중에 선택하는 것을 넘어, 무심한 근로자에게 위험성향대로 선택을 하도록 한다고 한다. 가령, TDF를 선택한 20세 근로자는 미국 같으면 TDF2050을 자동 편입할 텐데, 우리는 TDF 20230(저위험)과 TDF 2055(고위험) 중에 취향대로 근로자가 선택하도록 할 모양이다.

무관심의 관성이 선택을 지배하지 않을까. 관성을 끊고 수익률을 제고한다는 법 취지와 제도 디테일 간에 간극이 작지 않아 보인다. 아마 근로자들은 디폴트옵션 이전과 디폴트옵션 이후가 무엇이 달라졌는지 잘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 외에도 원리금보장상품 단품의 편입으로 연금운용의 기본원리인 포트폴리오운용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굳이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원리금보장상품 단품으로는 비록 지금은 금리가 올라가고 있지만 은퇴까지 근로자가 만나게 될 금융위기와 저성장이 만들어 낼 저금리 같은 자산운용의 역풍을 견뎌낼 수 없다. 아직 제도 유예기간이 1년 남았다. 성찰하며 제도의 취지가 희화화하지 않는 방향으로 한국형 디테일이 차근차근 완성되길 바란다.

물론 디폴트옵션의 성공은 제도만의 함수가 아니다. 제도와 시장이 성공의 좌우날개이다. 작년에 TDF로 운용한 퇴직연금이 전체의 6%를 넘었다. 미국은 디폴트옵션 도입하던 해에 5%였다. 출발점이 우리가 더 높다. 제도 도입과 무관하게 시장의 힘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을 보면 TDF 디폴트옵션은 MZ세대가 주도한다. 이들 연금자산의 85% 이상이 TDF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디폴트옵션 대상자 606만명 중에 절반이 넘는 350만명이 MZ세대이다. 가상자산, 동학개미, 서학개미로 본 MZ세대는 제도가 불리하다고 멈추는 것 같지 않다. 디폴트옵션 성공으로 가는 길에 ‘제도’를 뛰어 넘는 시장의 힘에서 희망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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