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원마저 모집 인원 '절반'…연수생도, 숙련공도 왜 떠나나

[르포]현대重 기술교육원 가보니
용접 등 무료교육·취업연결 기관
올 1000명 모집에 555만 지원 그쳐
연수생 “주변서 임금 적다며 꺼려”
과거 구조조정 상처로 기피직종 돼
  • 등록 2022-10-06 오전 6:30:10

    수정 2022-10-06 오전 9:13:31

[울산=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지난달 27일 찾은 울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지난 석 달가량 이곳에서 용접·배관·전기·기계 등 조선 관련 기술과 이론을 교육받은 4기 연수생 100여명이 막바지 이론 수업을 듣고 있었다. 교육 수료를 일주일 앞두고 조선소 협력업체에 취업하는 날이 다가온 터라 들뜰 수 있었지만, 조선업에 미래를 건 연수생들은 진지한 모습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었다.

이날 만난 연수생들은 조선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조선 기술자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녔던 홍지형(26) 연수생은 “조선 수주가 늘었다는 소식에 제대로 된 기술을 배운 뒤 일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힘들 수 있지만, 기술을 빨리 습득하면 더 나은 처우를 받을 수 있는 만큼 배운 기술을 갈고 닦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연수생들이 교육받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은 지난 1972년 문을 연 조선업 대표 교육 훈련기관으로, 연수생들은 △용접 △배관 △기계 △전기 △도장 등으로 구성된 조선 관련 기술 교육과정을 무료로 교육받을 수 있다. 교육 중 매월 훈련장려금 100만원이 나오는 것은 물론, 교육 이후 사내 협력업체에 취업한 뒤 경험을 쌓아 현대중공업 본사 취업을 노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에도 기술교육원은 올해 연수 목표 인원을 맞추지 못했다. 5차례에 걸쳐 연수생 1000여명을 모집했지만, 연수 인원은 555명으로 아직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기술교육원 측은 청년들이 자주 찾는 축구장과 야구장까지 찾아 홍보했으나 그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조선업이 활황이던 10여 년 전 연수를 받고자 지원자 간 경쟁을 거치던 시절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임금 적고, 고용 불안 여전’…조선소 찾지 않는 인력들

오랜 불황에서 벗어나 수주 호황기를 맞이한 국내 조선업이 인력난에 흔들리고 있다. 중소업체에선 ‘일할 사람이 없어 수주를 포기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수주 물량이 밀려 들어오더라도 이를 감당할 인력이 없으면 생산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 조선사들은 인력 구하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조선사들은 다양한 혜택을 앞세워 기술교육원 지원을 홍보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조선업에 발을 들이길 꺼린다.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으론 노동 강도 대비 적은 임금구조가 꼽힌다. 수년간에 걸친 장기불황에 조선업계의 임금 인상이 정체된 데 비해 최근 몇 년 사이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조선업 일자리가 경쟁력을 잃었다는 얘기다.

홍 연수생은 “주변 지인들에게 함께 조선소에서 일하자고 제안을 했지만, 조선소 업무가 거친 데 반해 임금이 적다는 인식 때문에 거절을 당했다”며 “굳이 타지 생활을 하면서까지 조선소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이 많고, 택배기사 일을 해도 조선소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수십년 간 조선업에서 일해왔던 숙련공들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열린 국회 토론회에선 한 조선소 협력업체 직원의 명목임금이 10년 넘게 200만원 초반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해 최저시급을 기준으로 한 월급(209시간 기준)이 190만원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숙련공들이 조선업을 떠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찾은 울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전경 (사진=박순엽 기자)
또 장기불황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했던 과거의 불안감이 아직 존재하는 점도 문제다. 현재 6~7년 전 구조조정 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업계를 떠난 조선업계 숙련공들이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도 대부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수시로 임금체납과 폐업을 반복하는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하며 해고 위험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에 종사하던 근로자 상당수는 현재 건설업이나 육상플랜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며 “비교적 안전하고 임금도 높은 데다 생산 물량이 끊겨 해고당할 일이 없으니 어느 숙련공이 조선업으로 돌아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조선업 숙련공 복귀를 위해선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등 근로 조건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업을 대하는 구직자 인식이 달라지고 있어 인력난이 고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기술교육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이도원 대리는 “저도 15년 전 기술교육원에서 처음 기술을 배웠지만, 그땐 조선소 기술자란 직업의 평판이 나쁘지 않았다”며 “기술을 익히는 데서 오는 성취감도 있는데, 요즘엔 조선업이 ‘힘든 일’이라는 데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울산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에서 연수생들이 교육받고 있다. (사진=현대중공업)
조선업 인력난 심각…“주 52시간제 유연한 적용 등 고려”

최근 국내 조선소 간 인력 유출을 두고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제소한 사건은 인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꼽힌다. 조선사 간 인력 문제로 공정위에 제소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선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고, 기존 숙련공들이 복귀해야 근본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력난 해결을 위해 조선업계의 수익성을 높이는 동시에 단기적으로는 유연한 주 52시간제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현재 조선업의 생산 인력난은 시급한 상황으로, 생산인력 부족은 내년부터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며 “단기적으로는 주 52시간제의 유연한 적용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장기적으론 조선업의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도 고려된다. 김영훈 경남대 조선해양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설계·생산 공정의 인력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 고도화를 추진하는 방법도 인력난 해결의 한 방안”이라며 “생산 공정 자동화, 스마트화 등 스마트 야드에 대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관련 정부지원 사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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