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이 넘는 연구개발 끝에 출시한 산소수 기기(가정용 정수기)가 호평을 받자 기대에 부풀었던 A(66)씨는 코로나라는 복병을 만나 주저앉았다. 집합금지 행정명령으로 방문판매업 자체가 중단되며 판매 사원 월급은커녕 임대료조차 낼 수 없는 처지에 몰린 것이다.
A씨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 3년 동안 이어지면서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됐고, 빚은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혼자서 발버둥쳐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고 했다. 결국 A씨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도움을 받았다. ‘새출발기금’을 신청해 채무 원금의 78%를 감면받고 10년에 걸쳐 월 29만원씩 분할 상환할 수 있게 되면서 숨통이 트인 것이다.
가정주부 B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처분해 보습학원과 분식집을 열었다. 나이 마흔에 얻은 막둥이까지 세 아이를 키우려면 수입을 늘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에 적자가 계속됐다. 빚은 늘어만 갔고, 잦아진 부부싸움에 이혼 후 싱글맘이 됐다. B씨는 “오전 9시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대는 카드사·은행의 전화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 자포자기하고 있는 마음이 굴뚝같았다”고 했다. B씨가 갚아야 하는 돈은 보증금 담보대출을 제외하고도 1억원에 달했지만 새출발기금을 통해 80%를 감면받았다.
국제회의 기획업과 회의 장비 렌털, 파티 케이터링 등을 영위하던 50대 C씨의 회사에도 코로나는 재앙이었다. 팬데믹 이전에 남아있던 운영 자금으로 반년은 버텼지만 상황은 점점 나빠져 곧 추가로 빚을 내야 했다.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고 남은 건 회사 이름과 빚뿐이었다. C씨는 “2년을 버티면서 가족 같던 직원들을 하나 둘 떠나보낼 때는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듯 했다”며 “사랑하는 딸을 생각하며 삶의 최후 경계 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견뎠다”고 했다. 그의 재기를 도운 건 ‘채무조정 상담을 진행하라’는 한 통의 문자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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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출범한 새출발기금은 코로나 사태로 피해를 입어 대출을 갚는 데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이다. 90일 이상 연체가 발생한 부실 차주는 ‘매입형 채무조정’을 통해 연체 이자를 감면받고 소득 대비 순부채 비중, 경제활동 가능기간 등을 고려해 원금도 최대 8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90일 이하 연체가 발생한 부실 우려 차주에 대해선 원금 조정은 되지 않고 대신 연체 기간에 따라 금리를 조정해주며 상환 기간을 연장해준다(중개형 채무 조정). 기초 수급자, 중증 장애인, 만 70세 이상 저소득 고령자 등 취약계층은 순부채의 최대 90%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지원 대상으로 확인되면 협약 금융회사의 모든 대출에 대해 신청 다음 날부터 추심이 중단된다.
11월말 기준 2만6000명이 넘는 이들이 채무조정을 지원받았다. 1만4423명(채무 원금 1조1140억원)이 매입형 채무 조정 약정을 체결했으며 평균적으로 원금의 70%를 감면받았다. 중개형 채무조정을 확정한 채무자는 1만2314명(채무액 7944억원)으로 평균 이자율 감면폭은 약 4.5%포인트였다.
캠코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장기연체 등 이미 부실이 발생한 이들에 대해서는 상환 능력에 맞게 채무조정을 지원하고, 장기 연체되지 않았더라도 부실이 우려되는 이들에게 금리와 상환 기간을 조정함으로써 영업 회복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새출발기금 채무 조정은 온라인 통합 플랫폼과 전국 26개 캠코 지역본부·지사, 50개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