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가해자에만 따뜻한 법' 안되려면

  • 등록 2022-10-04 오전 6:15:00

    수정 2022-10-04 오전 6:15:00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 “법이 우리 아이, 피해자에게만 너무 차가웠다. 가해자에게는 너무 따뜻했다.”

지난달 29일 고(故) 이예람 공군 중사를 강제 추행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몬 부대 상관인 장모 중사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7년 형을 확정한 후, 고인의 어머니가 법원 판결에 아쉬움을 드러내며 한 말이다. 언론을 통해 어머니의 말을 접하는 순간 머리가 띵했다.

현대문명 국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룬 쟁점 중 하나에 ‘범죄자에 대한 인권보장(강화)’은 단골 메뉴로 포함된다. 고문과 가혹한 형벌로 상징되는 과거와 단절하고, 이를 통해 시민이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범죄자라도 적법절차와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 문명사회의 중요한 척도가 됐다. 이러한 추세는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는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미 미국, 일본, 중국, 중동국가 등을 제외하고는 세계적으로도 폐지하는 추세이고, 우리나라도 1998년부터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고 이 중사 어머니와 같이 범죄로 생명을 잃게 된 유족의 울부짖음을 마냥 외면할 수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범죄에 대해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대신 국가가 나서서 형벌을 집행하는 것은 국민과 국가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범죄로 인한 피해와 범죄자에 대한 형벌 간에 ‘적절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적절성’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의 범인인 전주환에 대해 어떻게 처벌하는 것이 적절한가. 이미 그는 피해자를 스토킹하고 불법 촬영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앞으로 그는 피해자의 근무지를 찾아가 보복 살인한 것에 대해서도 재판을 받게 되는데, 어떠한 형벌이 적절할까. 얼마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헤어진 연인을 스토킹한 끝에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을 받고 보복 살인한 김병찬에 대해 항소심은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1심보다 5년이 늘었다. 그렇지만 유족들은 ‘사형선고’를 해야 한다며 오열했다. 댓글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의 형벌이 적절하지 않다는 신호인 셈이다.

형벌의 목적은 범죄자를 응징하기 위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를 정상적인 사회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정시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다수설이다. 또한 머지않아 헌법재판소는 사형제도를 위헌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실상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가석방돼 사회에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빼앗아도 범죄자는 언젠가는 사회에서 자유를 누리고 산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가의 형벌권 행사가 적절하다고 볼 수 있을까.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의무다. 그런데 중대한 범죄가 발생했다면, 국가는 적절한 형벌권이라도 행사해야 하는 것이 의무가 아닌가. 이를 위해 헌법에 설치된 국가기관에 몇 가지 요청한다. 국회는 신상 공개 대상 범죄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찰은 중대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신상을 공개하고, 범죄자를 단죄하는 판사는 기록에 드러난 피고인의 양형 사정만큼 피해자의 고통과 유족의 아픔에 대해서도 보다 고민했으면 한다. 긴급체포 된 전주환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됐으면 이번 참사는 방지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도 안타깝다. 그리고 수형자에 대한 가석방도 신중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최소한 보복(강도)살인, 아동 성폭행, 대량 성 착취물 제작·유포와 같은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가석방은 극히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이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복귀에 제약을 두는 일이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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