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수술실 멈추자 수입 끊겼다"…생계 막막한 간병인들

■간병인 100명 설문조사 단독 입수
전공의 집단 사직 후 수입 42.5% 감소
노동권 인정 안돼 국가·병원 도움 못 받아
"공공에서 간병업무 점차 흡수해야 해"
  • 등록 2024-03-21 오전 5:50:00

    수정 2024-03-21 오전 5:50:00

[이데일리 이영민 기자]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한 달째 이어지면서 간병인의 생계가 흔들리고 있다. 대학병원이 수술을 대거 축소하고 중증 환자들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면서 일감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실제 전공의들이 진료를 거부한 이후 간병인들의 수입이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예 소득이 ‘0원’으로 줄어든 간병인도 다수였다. 전문가들은 집단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의 간병인들이 더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픽=이미나 기자
“근무 일수 반토막, 수입은 10분의 1…사실상 마이너스”

20일 이데일리가 단독 입수한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간병인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파업하기 전인 1~2월 매주 평균 4일(3.9일)씩 일하던 응답자들은 이달 들어 매주 평균 이틀(2.2일)만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이들의 주간 평균 수입은 52만7850원에서 42.5%(22만4100원) 감소했다. 한 달로 계산하면 90만원가량이 줄어든 셈이다. 10명 중 1명(10명)은 3월 1일부터 보름간 단 하루도 일하지 못했다. 이 사태가 길어진다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크게 줄어든 수입과 평행선을 달리며 접점을 찾지 못하는 의·정 갈등을 보며 애를 태우는 간병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만난 문모(68)씨는 간병인으로만 20년을 일한 베테랑으로, 매주 평균 6일 144시간씩 환자를 돌봤다. 이를 통해 200만원 남짓 벌어들이는 수입은 가계를 꾸려가는 데에 큰 보탬이 됐지만, 최근 부쩍 줄어든 수입에 걱정이 늘고 있다.

문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뒤 근무일이 일주일에 2~3일로 줄었고, 매달 200만원 내외로 들어오던 수입은 10분의 1로 줄어 20만~30만원밖에 벌지 못하고 있다”며 “보험료나 생활비 같은 고정 지출이 150만~200만원이라 사실상 마이너스다. 지금은 미리 모아둔 돈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단체행동으로 생활에 문제가 생겨도 이들은 병원이나 국가에 도움을 구하기 어렵다. 이들의 상당수는 민간시설에서 교육과정을 수료한 뒤 개인 간 소개나 인력사무실을 통해 일감을 구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어 노동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형식으로 일하는 간병인은 전체 취업자 수조차 정확히 집계되지 않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린 유령 노동자”…전문가들 “공공 영역에서 관리해야” 조언

이들 간병인들의 평균 연령이 64세에 달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요양기관 등에 취업을 하고 싶어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원도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25년 차 간병인 한영란(68)씨는 “(병원에서 일하는) 간병인의 80% 정도는 국가에서 인정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만 요양병원이나 요양센터는 65세 미만을 찾기 때문에 그 이상 나이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유령노동자’라고 부른 한씨는 “부모님을 챙기고 자식 키우면서 이제 조금 벌려고 하는데 일이 줄었다”며 “간병을 그만둔다고 하면 병원 간호사들이 나가지 말라고 사정하는데 아무도 우리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푸념했다.

20년 차 간병인 남정옥(65)씨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지만 시어머니에게 치매가 있어서 급할 때는 근무시간을 조정해야 했다”며 “요양병원은 근무시간이 고정적이라 비슷한 간병 일을 계속했다”고 했다. 남씨는 “우리는 민간업체에 소속돼 있으니까 피해를 하소연할 곳이 없다”며 “정부와 의사들이 제발 협상을 잘해서 환자가 다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간병 업무를 공공영역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증원 정책이 일단락되면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 간병”이라며 “한국은 간병이 제도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도 “결국 공공의 영역으로 간병을 끌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호사는 노동조합처럼 목소리를 낼 곳이 있지만 간병인은 이런 것도 여의치 않아 더 힘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지난 정부에서부터 가족간병을 공공간병으로 전환하는 주장이 제기됐는데 지금부터라도 간병을 공공영역에서 다루면서 관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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