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2000·3000…고지 넘을 때마다 울고 웃은 韓증시 65년사

코스피1000…3저호황·IMF·닷컴버블의 역사
코스피2000…펀드열풍·리먼사태·반도체 호황
코스피3000…코로나19와 동학개미의 힘
  • 등록 2021-01-06 오후 2:11:54

    수정 2021-01-06 오후 2:11:54

[이데일리 이슬기 기자] 한국 증시가 ‘코스피 3000 시대’를 맞이하는 데엔 자그마치 65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3저호황·외환위기·닷컴버블·펀드열풍·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긴 세월동안 코스피 지수는 오늘처럼 웃는 날도 있었지만, 반대로 좌절과 고난을 겪은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코스피 3000 시대는 한국 증시에게 더 특별하다. 1000·2000·3000, 코스피 지수가 주요 마디대를 넘겼을 때 한국 증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어떻게 다르고 또 똑같을까. 코스피 3000 시대의 의미와 전망을 짚어본다.

코스피1000…3저호황·IMF·닷컴버블의 역사

한국에 주식시장이 처음 열린 건 1956년의 일이다. 서울 명동에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됐고, 조흥은행이 1호로 상장되는 등 12개 종목이 증시에 데뷔했다. 개장 첫해 주식거래대금은 단 3억 9400만원. 그때와 지금의 돈 가치는 다르겠지만, 단순히 금액만 보면 모든 상장주식이 현재기준으로는 저유동성종목으로 관리대상이다.
1956년 3월 대한증권거래소 증권시장 개장(사진=한국거래소 제공)
1979년 여의도로 자리를 옮긴 증권거래소는 경제발전과 함께 급속도로 변모한다. 1983년 122.52포인트에서 공식 출범한 코스피 지수는 저금리·저유가·저달러의 이른바 ‘3저 호황’을 업고 1989년 3월 31일 처음 1000포인트 고지를 넘어선다. 당시 증권사 객장은 미아 찾기 안내방송이 흘러나올 정도로 투자자들로 북적였고, 그만큼 주식 투자열풍은 뜨거웠다. 주식거래대금은 1985년 7조원에서 1989년 86조원으로 4년 사이 12배가 불어난다. ‘주식은 사두면 오른다’는 신화가 자리잡기 시작했고, 노태우 정부는 1987년 대선 승리 직후 중산층 이하 국민들을 위한 ‘국민주 개발·보급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6년 만에 달성한 1000포인트는 5일 만에 무너졌다. 미국이 ‘블랙 먼데이’를 맞았고 원화 평가절상 압박수위가 높아지는 등 악재가 이어졌다. 빚을 내 투자한 사람들은 깡통계좌를 안고 울었고, 이재민(罹災民)을 본떠 만들어진 단어 ‘주재민(株災民)’ 얘기가 매일같이 신문에 보도됐다. 이후 코스피 지수는 눈물을 딛고 일어서며 5년 5개월 만인 1994년 9월 16일에서야 다시 1000선을 회복한다.
1989년 3월 31일 코스피 지수가 1000선을 돌파했다(사진=한국거래소 제공)
코스피 지수는 1000선을 되찾았지만 그 다음으로 도약하기는 쉽지 않았다. 1994년 11월 1145포인트까지 올라섰던 코스피 지수는 줄곧 하락하더니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1998년 6월 277선까지 곤두박질 친다.

그러나 코스피 지수는 이후 약 1년 만인 1999년 7월 또 다시 1000선에 올라선다. 이번엔 닷컴 시대 도래가 이유였다. 새천년을 앞둔 한국 시장에선 첨단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에 IT종목들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솟는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열풍이 거셌는데, 인터넷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는 사업모델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던 골드뱅크란 회사는 상장 후 주가가 단 1년 만에 50배 올랐다.

그러나 막상 새천년이 밝자 사람들은 오늘이 어제랑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주가를 떠받칠 마땅한 연료가 없자 2000년 1000포인트에서 시작한 코스피 지수는 그해 말 500포인트까지 반토막났다. 닷컴버블의 붕괴였다. 그러다 5년 뒤인 2005년이 돼서야 다시 1000포인트를 회복한다.

코스피2000…펀드열풍·리먼사태·반도체·무역분쟁

코스피 2000시대를 연 건 중국경제의 급성장과 적립식 펀드 열풍이었다. 2007년 7월 25일 코스피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돌파했다. 그해 중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무려 14.2%를 기록하며 피크를 찍었다. 한국에서는 중국에 투자하는 펀드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르며 너도나도 가입했다. 여기에 적립식 펀드 투자 열풍도 가세했다. 미래에셋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인사이트 펀드’는 2.5%에 달하는 수수료에도 불구하고 보름만에 3조원을 블랙홀처럼 끌어모았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코스피 지수는 2008년 10월 892포인트까지 폭락한다. 이후 경기가 반등하며 2010년 말에는 다시 2000포인트를 되찾는다. 다만 그 뒤로 2017년까지 오랜 기간 2000~2200선 사이를 오가는 ‘박스피’에 부딪치게 된다.

이후 코스피 지수를 박스피에서 구해낸 건 반도체의 힘이었다. 2017년 무렵부터 반도체가 ‘슈퍼 사이클’이라는 호황을 맞았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코스피 시장 내 30%의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005930)가 급등하면서 2018년 1월 코스피 지수는 2607선까지 오른다.

그러나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지나고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때리기에 나서며 코스피 지수는 또 다시 2019년 8월 2000선 아래로 떨어진다.

코스피3000…코로나19·동학개미의 힘

미·중 무역분쟁이 시련의 끝인 줄 알았건만, 이후 코스피 지수는 또 하나의 시련을 맞닥뜨린다. 바로 코로나19다. 1월 말 중국에서 원인 모를 폐렴이 시작됐다는 보도가 국내에서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더니 한 달 뒤 쯤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며 사람들은 집에 갇혀 지냈고, 소비와 투자가 둔화되자 증시도 타격을 입는다. 22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 지수는 2020년 3월 무려 1439선까지 폭락한다.

코스피, 장중 사상 첫 3,000 돌파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위시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며 증시는 오뚝이처럼 다시 선다. 특히 한국의 경우 개인투자자들이 외국인과 기관이 내던진 매물을 모두 받아들며 시장을 굳건히 바친다. 개인투자자의 행태를 두고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즈음이다. 동학개미 덕에 5월 말 코스피 지수는 2000선을 회복한 데 이어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경신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전기차 열풍 등으로 테슬라의 주가가 오르며 덩달아 LG화학(051910) 등 2차전지주도 급등한다. 네이버(035420) 카카오(035720) 등 플랫폼 기업의 주식도 파죽지세로 올랐다.

2021년 1월 6일 코스피 지수는 올해에는 글로벌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까지 합쳐지며 장중 사상 최초로 3000포인트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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