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방성훈 기자] 소비지표가 지난해 신용카드 대란 이후 가장 나빠졌다. 2년 연속 3% 미만의 저성장이 지속된데다 늘어나는 가계부채가 소비를 짓누른 탓이다. 1%대 저물가는 임금인상에 대한 기대마저 약화시켰고, 팍팍해진 살림에 해외직접구매 등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성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 결과 국내에서 쓸 것도 해외에서 쓰게 되니 민간소비가 더디게 살아나는 분위기다.
소비지표마다 줄줄이 최저..카드대란 때보단 그나마 덜해 | <자료: 한국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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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되는 소비지표마다 줄줄이 지지부진하다. 27일 한국은행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신용 잔액은 58조3000억원으로 전년대비 5000억원, 즉 0.8% 증가하는 데 그쳤다. 2003년(-44.5%), 2004년(-5.1%)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판매신용은 신용카드(일시불+할부)로 구매 후 갚아야 할 돈과 자동차 리스 등 할부금융을 합친 금액이다. 이중 특히 신용카드 잔액은 8000억원 감소해 카드대란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 <자료: 통계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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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체크카드 등 전체 카드 이용금액도 줄었다. 전체 지급카드의 하루 이용금액은 1조6390억원 수준으로 1년전보다 4.8% 증가하는 데 그쳐 2004년(-5.7%) 이후 가장 낮았다. 정부의 신용카드 억제정책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둔화된 측면이 있지만, 소비부진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단 의견이 우세하다.
통계청 가계신용에서도 소비부진이 확인된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48만1000원으로 0.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실질증가율로 따지면 오히려 0.4% 감소해 4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처분가능소득×100)은 73.4%로 통계청이 가계동향 통계를 전국으로 개편한 200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부진이 카드대란 당시 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위기 이후 회복이 지지부진하게 이뤄지면서 내수회복의 힘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민간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보다 낮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8%인 반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1.9%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가계부채·고령화가 발목 잡고..소비심리까지 악화올해는 지난해보다 소비가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넘어서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올 성장률을 3.8%로 전망하면서도 민간소비 증가율을 3.4%로 예상했다.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싼 물건을 찾아 해외직구가 증가하는 것도 절대적인 비중은 작지만 소비증가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팀장은 “소비로 갈 돈이 가계부채로 인해 줄어든 측면이 있는데다 가계의 절약분위기가 (저렴한) 해외직구로 이어지고 있다”며 “(해외직구가) 개인적으론 전혀 문제될 게 없는데 나라 전체로 보면 비중은 작지만 소비부진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직구금액은 지난해 7억1000만달러로 2년 전보다 두 배 가량 급증했지만 국내 소비로는 잡히지 않는다.
고령화 등으로 현재의 소비를 미래로 늦추는 경향이 짙어진 것도 소비가 빨리 살아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은은 최근 보고서에서 “2000년 이후 고령화로 평균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은퇴 후 고령층의 주된 소득원인 국민연금 고갈 가능성 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현재의 소비를 미래로 늦추고자 하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최근엔 소비심리까지 악화됐다.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108로 5개월 만에 하락했다. 특히 저물가가 계속되면서 임금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약화돼 가계수입과 소비지출전망까지 나빠졌다. 물가 및 임금전망CSI는 각각 136, 118로 전월대비 2포인트, 1포인트 하락했다. 가계수입 및 지출전망CSI도 102, 110으로 1포인트, 2포인트 떨어졌다. 다만 수치가 100이상인 만큼 아직까지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은데다 한 달 지표로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근태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문제와 고령화 등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비를 늦추는 경향이 강해 소비가 빠르게 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라며 “전반적으로 수출이 늘고 소득도 같이 늘면서 소비가 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